제5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29. 운전을 그만두고 백배 더 좋아졌다 223P
나는 차가 없다.
묵혀 둔 무사고, 무위반의 운전면허증은 눈부시게 빛나는 골드(유효기간 5년 이상의 우수 면허)다.
우수 운전자로 불리는 게 우스워서 스스로 '골든 장롱 면허증'라고 말하고 다닌다.
일본에서 면허를 취득했을 때가 열아홉 살이었고, 미국에서 무면허 칭호를 얻은 때가 서른일곱 살이었다.
18년 동안 '운전하기'와 '운전 안 하기' 사이에서 질질 시간을 끌면서 발버둥을 치다가 그때서야 비로소 끝을 맺었다.
역시 나와 맞지 않는 일은 안 하는 게 최고다.
좋고 싫음에 상관없이 운전을 못하는 사람들의 몫까지 운전자로서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몸에 문제가 있지 않아도, 시험에 합격해서 면허가 있으면서도 "서툴러서 그만두었습니다"라며 자신이 완수할 의무로부터 도망치는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말이다.
내가 출판사에 근무했을 때 한 작가의 취재 여행에 동반한 적이 있다.
나는 계속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한창 바쁜 마감 시기였는데, 선생님은 분주한 여정 속에서 신작 소설을 구상하는 동시에 나를 대신해 핸들까지 잡았다.
"이럴 거면 너 여기에 왜 왔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여기저기에서 혼이 났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제가 운전하면 선생님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아집니다"라고 반론했다.
회사에 입사할 때 이력서의 자격란에 '보통 면허'라고 쓴 주제에, 나는 한순간에 굉장한 월급 도둑에 이어 출장 수당 도둑까지 되어 버렸다.
서툴면 운전면허를 안 따면 되지 않나,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애초에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대입 시험 합격 발표와 동시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집 근처 자동차 운전 학원으로 갔다.
대학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운전 교습비는 부모가 전부 내주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의무적인 감정은 내가 처음 교습용 자동차 핸들을 잡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운전 학원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나는 운전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운전 적성 검사에서 '사소한 일에 신경질적이고 컨디션이 무너지기 쉬우며 냉정한 상황에서 잘 판단하지 못하는 ' 성향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고속 교습에서 죽는 줄 알았다.
나는 다른 차의 움직임을 전혀 읽지 못했다.
강사의 조언대로 핸들을 고쳐 잡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시험을 통과했는지 생각이 안 난다.
합격이라는 소리에 오싹하니 몸이 떨렸다.
부모의 돈으로 면허를 땄으니, 부모를 위해 부지런히 운전해야 했다.
하지만 '너도 얼른 면허를 따라'라고 계속 주문해 온 부모조차 딸과 외출한 첫날에 내 운전에 기겁하며 "그만! 갓길에 차 세워! 내가 운전하마!"라고 소리쳤다.
우회전하는 곳에서 반대 차선으로 들어가 역주행을 해 버렸다.
도쿄 타워 바로 아래의 도로였는데, 지금도 지나갈 때마다 섬뜩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제대로 커밍아웃하기까지 1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정말로 운전이 서툴다.
작정하면 못할 것도 없다는 듯이 행동해 왔지만, 이제 두 번 다시는 절대로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다.
지금은 운전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도심에서의 일상생활은 대중교통으로 충분하다.
잠깐 여행을 떠날 때는 평소의 운전 부족을 해소할 겸 자전거를 탄다.
지방으로 출장을 떠날 때는 사전에 각지에서 택시를 부르는 방법을 미리 조사해 둔다.
장거리를 드라이브할 때는 지도 준비부터 졸음을 쫓는 역할까지 조수석에 앉아 운전자를 철저히 서포트하기 위해 노력한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당연해질 것이다.
개인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도 점차 줄고, 자동차를 렌트하는 서비스마저도 사람들은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서로 융통해 가며 차량을 불러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만연해질 것이다.
그 사이에 운전자도 사라지고 인공 지능(AI)이 조종하는 진정한 '자동'차가 우리를 데리러 올 것이다.
30. 집안일, 꼭 내가 할 필요는 없잖아요? 233P
'집안일'하면 항상 연상되는 정경이 있다.
그것은 마치 재앙신을 모시는 듯하다.
갑자기 택시 조수석의 뒤에 꽂힌 전단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왼쪽으로 올라탄 뒷좌석의 승객이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콜택시 서비스의 자사 광고 사이로 '세대 연 수입 700만 엔 이상이라면 집안일 대행'이라고 적힌 전단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떤 불황에도 영수증만 끊으면 회사 경비로 택시를 탈 수 있는 사람, 죽어라 일한 만큼 요금은 신경 쓰지 않고 택시를 퇴근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다른 일도 돈으로 살 수 있답니다'하고 달콤하게 속삭여 오는 광고였다.
당시 나는 혼자 사는 삼십 대 회사원이었고, 연 수입은 700만 엔이 채 되지 않았다.
매일 밤늦게 퇴근해서 잠만 자는 집은 완전히 황폐한 상태로 방치되었고 그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인생의 단계를 한 단계, 두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면 나에게도 집안일을 그만두는 선택지가 있는 것이다.
잇달아 결혼하고 차례로 육아 휴직을 가지는 또래의 친구들은 출산 전후의 우당탕탕 요란함 속에서 상당한 비율로 집안일 대행 서비스를 이용했다.
엄청난 갑부는 아니어도 물가와 급여 수준이 높은 오랜 도시 생활에서 남편과 비슷한 벌이에 집안일을 동등하게 분담하면서 자신의 경력을 포기할 마음이 추호도 없는 여성들이 애용하는 서비스였다.
결혼 직후 여러 가지로 분주한 시기에 나도 집안일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
몸집이 작은 여성이 와서 지정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정확히 시간을 재면서, 우리 부부가 속수무책으로 이것저것 정리해 주었다.
신기한 비밀 도구를 사용해서 욕실과 주방의 찌든 때도 깨끗하게 없애 주었다.
덕분에 반짝반짝 광이 나고 집 안 전체가 한층 밝아졌다.
업자가 파견한 그녀는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일하는 여성'이다.
개인 가방 사이로 보이는 캐릭터 상품으로 보아 어린 남자아이를 둔 아이 엄마인 듯했다.
우리 부부가 집안일 대행 서비스를 받고 지불한 요금은 그녀의 임금이다.
그 돈은 아들을 맡긴 어린이집에 입금되고, 다시 그 돈은 어린이집 교사의 급여가 될 것이다.
그 여성과 단골 거래처 기업에서 근무하는 업무 파트너 여성은 다를 바가 없다.
저마다 각자 일한 만큼에 해당하는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받을 뿐이다.
나의 엄마는 전업주부라는, 역사가 짧은 극히 특수한 직업에 종사했다.
분명 '집안일에 돈을 쓴다'같은 발상은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딸인 나는 매일같이 밤늦게 야근하고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엄마처럼 완벽한 살림은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했다.
집안일 역시 노동이다.
일시적이지만 대행 서비스를 사용해 보니 그 말을 시각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2시간에 몇천 엔, 확실히 조금 비싸다.
하지만 이 정도 돈은 미용실이나 마사지 가게에서 서비스를 받을 때, 세탁소에서 셔츠를 맡기면서 다림질을 주문할 때 지불하는 비용과 비슷하다.
화장실 청소, 가스레인지 닦기, 옷방 정리에 소요되는 시간이 무상으로 간주될 리 없다.
그러므로 집안일 대행 서비스는 가정부를 고용하는 일에 비하면 파격적으로 싼 금액이다.
내가 도저히 못하는 일은 전문 직능을 지닌 사람에게 맡기는 거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내가 잘하는 일에 더 몰두한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효율화되면, 언젠가 모두 행복해지는 미래가 완성되지 않을까.
인생의 계단을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면 잘 못하는 일은 그만두어도 괜찮다.
31. 다리미질에 좀 소홀해지면 어때서 240P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 앞의 상점가에 고도의 얼룩 제거 기술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작은 세탁소가 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얼룩진 치마를 맡겼는데, 평판대로 얼룩이 깨끗하게 지워져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순간, 유리문에 붙은 요금표에 시선이 멈추었다.
'셔츠, 블라우스 드라이클리닝 120엔부터' 역시, 인기의 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당시로서도 눈을 의심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그 세탁소의 회원으로 등록했고 이후로 미친 듯이 이용했다.
업무복인 블라우스는 옷깃이나 소매가 더러워지면 바로바로 맡겨 버렸다.
택배 서비스는 없었고 급한 마감은 별도의 요금이 들었지만 주말에 모아서 받아오거나 모아서 맡기면 최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장이며 코트며 웬만한 옷은 죄다 맡기다 보니 집에서 빨 수 있는 값싼 옷을 한가득 사서 입고 버리는 것보다도 마음에 드는 옷을 신중히 구입해서 5년이고 10년이고 오래 입는 쪽이 내 성격에 훨씬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탁소 앞에서 전문가와 나누는 잡담 덕분에 독학으로 손빨래할 때보다 깨알 지식도 늘었다.
무엇보다도 고작 하루 입고 쭈글쭈글 더러워진 셔츠, 블라우스가 새하얗게 말쑥해져서 돌아왔는데 그 값이 캔 커피값보다 쌌다.
그렇게 전문가에게 다림질을 맡기고 나는 집안일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바쁘게 일하던 젊은 시절에 유명 세탁소 근처에서 살았던 행운을 틈타 서툰 집안일을 그만둔 선택에, 나는 돈을 아주 올바르게, 탁월하게 썼다고 생각한다.
인류에게 이런 해방감보다 높은 가치가 있는, 반드시 돈을 주고 사야 할 것은 단연코 없을 거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주머니 속의 푼돈은 큰돈이 필요 없는 일에 더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다.
지금은 인간이 전문적으로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언젠가는 진정한 의미에서 전자동화되고, 나아가 가격도 파격적으로 바뀔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일 자리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집안일의 최적화야말로 하루빨리 기계에 맡기는 것이 좋다.
32.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권리 245P
국어와 산수, 서예와 뜀틀과 리코더 등 사람마다 각자 맞는 게 있고, 안 맞는 게 있다.
이를테면 요리 실험, 가정 시간의 조리 실습이 그렇다.
나는 과자 재료의 계량이나 생선 살을 발라내는 일보다 리트머스 시험지 실험이나 개구리 해부를 더 좋아했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증발 접시의 아름다운 잿빛 반응을 바라보는 일을 즐거워했다.
반대로 조리 실습은 우울했다.
부엌일은 여자가 매일 해야 하는 일이라는 그 압박감이 나를 오랫동안 옥죄었다.
슈퍼에서 사 온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를 연구해 가며 열중해서 술안주로 만들어 나간다.
어쩌다 갖는 휴일에 주방에 서면 충실감이 느껴져 기분이 전환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주방에 서는 이유의 9할은 일시적인 기분 때문에 구매하고 남은 식재료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냉동고에 부추와 배추를 수납하기 위해 냉동된 밥을 해동해서 먹는다거나, 참깨 드레싱의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거나, 익혀 먹는 채소를 대량으로 삶는다거나, 선물로 받은 사과가 썩을까 봐 잼을 만든다거나 그런 이유로 말이다.
그 공허함에 설거지하는 수고까지 더하면 고도로 발달한 일본의 외식 산업의 위대함이 떠올라,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500엔 동전 하나로 30가지 품목의 편의점 도시락을 골라서 살 수 있고, 따끈따끈한 소고기덮밥에 된장국과 샐러드까지 곁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왜 이러고 있을까.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손수 밥을 해 먹으면 절약도 되고 좋다"라고 말하지만 대가족이 냄비를 에워싸거나 매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게 아니라면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다.
먹고 싶어서 바지락탕을 해 먹은 다음 날에 먹고 싶지 않은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 반강제적인 상황을 과연 경제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밥을 사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접받았던 본가에서의 생활이나 남을 불러 대접하는 게 취미라는 친구들의 호사스러운 요리에 비하면, 내가 지어먹는 밥은 정말로 손수 다듬은 식재료에 불과하다.
직장에서 혼자 사는 여성이 "저는 요리를 안 해요"라고 말하면 순간 정적이 흐른다.
또 어떤 여성이 더러운 방에 산다고 이상한 소문이 나서 당사자가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라도 하면 "집안일이 서툴러서 부엌일도 잘 안 하죠?"라고 물으며 사람을 당황시킨다.
떨어진 셔츠 단추를 다시 달거나 더러워진 신발을 닦는 정도의 집안일을 하듯 나도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그런데 속옷을 자주 손빨래해도, 정해진 요일에 제대로 분리수거를 해도, 깨끗해질 때까지 화장실을 청소해도, 장식 선반을 직접 만들어도, 관엽 식물을 잘 키워도 '요리를 안 한다'라고 말했을 뿐인데 집안일을 전혀 못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현재 거의 요리하지 않는다.
아침은 커피를 끓여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먹고, 점심은 행선지에서 간단하게 해결하는 일이 많고, 저녁도 남편과 함께 한잔하러 밖으로 자주 나간다.
결혼 전에 남편은 밥을 거의 지어먹은 적이 없었는데, 미국으로 이사하고 집 근처에서 먹은 일본 요리의 형편없는 맛에 분개하여 "이런 음식을 돈 주고 먹다니, 차라리 내가 직접 만든다"라고 말하며 갑자기 초보자용 요리서를 대량 구입했다.
그 뒤로 육수를 내는 법부터 하나하나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조리 기구나 조미료를 모두 구비해 놓고 꾸준히 연습하더니 순식간에 실력이 향상되어 이제는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한다.
우리 부부가 함께 돌아다닌 여행지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곳은 대만의 야시장이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시장에는 다양한 포장마차가 즐비했고 무엇을 먹어도 싸고 맛있었다.
달달한 군것질까지 포함해서 하루에 네다섯 끼를 먹었다.
그야말로 계속 무언가를 부산스레 먹어 대는 무위도식 여행이었다.
대만은 보통 맞벌이 가정이라서 주방이 없는 집 구조의 임대 건물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외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듯했다.
대만에서 돌아온 뒤부터 우리 부부는"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아요. 자녀가 있으면 힘들겠지만, 성인 두 명뿐이라 지어먹지 않아도 그런대로 생활이 가능해요. 사이좋게 외식을 즐기다 보니 맛 좋은 가게도 여럿 개척해 두었어요. 라며 밝은 어조로 당당히 말하고 다닌다.
외식을 많이 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협박받는 일도 종종 있지만 초심자가 직접 해 먹는 음식 역시 건강에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집에서는 국 하나에 반찬 한두 가지로 끼니를 해결하고, 고기나 채소는 밖에서 실컷 먹는 편이 오히려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쉽다.
규칙적으로 절제하면서 외식을 이어가는 지금이 집에서 콩나물만 먹던 때보다 훨씬 건강하다.
'가정으로 회사 일을 가져오지 않는' 버릇뿐만 아니라 '가정으로 부엌일을 가져오지 않는 습관' 또한 철저히 지켜지면 장점이 매우 크다.
대만이 바로 그 본보기다.
절약은 식비 이외에서 변통이 가능하다.
33. 정리정돈의 늪에서 빠져나오다 254P
사람들은 정리 정돈에 얼마나 자신이 있을까?
내가 정리 정돈에 꽤 자신감을 보이면 가족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한 내 방, 마구 어질러진 내 책상, 도무지 정리되지 않은 산처럼 쌓인 내 세탁물 등 가족들은 누구보다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감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깝다.
나는 내 분수를 아주 잘 안다.
베스트셀러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저자이자 넷플릭스 방송 <곤마리>에 등장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곤도 마리에의 정리 정돈 능력치를 레벨 99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레벨 40 전후다.
나는 정리 정돈은 잘하지만 단샤리 능력치는 평균보다 낮고, 수납 능력치는 보통이다.
또 대청소는 좋아하지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자신에게 한계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으면 무조건 달리지 말고, 목표를 다시 조정하거나 낮추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의류 수납 기술을 충분히 참고하니, 지금까지 스트레스가 거짓말이었다는 듯 옷장 사용이 편리해졌다.
하지만 퇴근과 동시에 가방의 내용물을 모두 꺼내라는 가르침은 정중히 무시하고, 파우치를 통째로 다른 가방으로 옮기는 종래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 할 수 없는 건 안 하는 게 최고다.
나의 일상용 가방은 거의 비상용 수준이다.
반나절은 물론이고, 하룻밤 정도는 숙박이 가능한 상태로 항상 준비되어 있다.
비가 내릴지 안 내릴지 마음을 졸이는 일이 너무 귀찮아서 가방에 초경량 접이식 우산을 사서 넣어 두고는,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했다.
열쇠, 카드, 휴대전화만 들고 다니는 친구들은 왜 항상 나에게 짐이 많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여기에 갈아입을 옷만 챙기면 몇 박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짐이 적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며칠 묵는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면 그녀들보다 내 가방이 훨씬 가볍다.
평소에 '여행 가방이다' 생각하고 휴대품을 엄선해서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방 안의 내용물을 정돈하는 나의 능력치는 레벨 70 이상 된다고 본다.
반면 큰 공간과 머물러 사는 방에 대한 정리 정돈 능력치를 환산하면 상당히 낮다.
나는 온갖 문구류를 빈 과자 상자에 잡다하게 담고, 이를 도구함으로 사용한다.
또 뱅커스 박스, 즉 뚜껑 달린 골판지 상자를 그대로 수납함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매일 사용하는 귀중품의 경우는 일일이 꺼내지 않고 가방에 넣어 둔다.
적당히 정리하면서 레벨 40으로 사는 이 상태가 나는 딱 좋다.
고도의 신상품이 끊임없이 개발되기 때문일까.
내 방이 생각대로 정리되지 않거나 금방 더러워지면,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참을 수 없는 초조함보다 레벨 99의 방처럼 정돈되지 않아서 느끼는 부담감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너무 깨끗한 집에 초대되면 갑자기 피로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사는 집, 일하는 방식, 생활 방식, 결벽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집안 관리나 정리 정돈에 인류 공동의 절대적인 정답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모두가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는 없다.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사는 행복의 모양은 한 가지만 있지 않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이 최우선이라면 적당히 흐트러진 방에서 푹 자는 게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을 수 있다.
최저 레벨 40 이상에서 평균 레벨 60 정도로, 자신이 쾌적함을 느끼는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생활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청소, 빨래, 부엌일, 설거지, 정리 정돈 같은 집안일을 완전히 그만둘 수는 없겠지만 적당히 내려놓고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집은 사적인 공간이니, 굳이 말하지 않으면 들키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더더욱.
위의 내용은 유노북스에서 출판한 오카다 이쿠 저자의 마흔에는 홀가분해지고 싶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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