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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마흔에는 홀가분해지고 싶다 제6장 - 오카다 이쿠

by 쥬블로그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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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홀가분한 여성은 혼자서도 강하다

34.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263p

인간은 태어난 후부터 처음 20년간 서고 걷는 것을 기억하고 말을 배우고 익히며 다방면으로 교육을 받는다.

또 작아진 신발은 계속해서 갈아 신으며 육체의 상장을 중심으로 나이를 먹어 간다.

이처럼 스무 살까지 겪는 인생의 극적인 변화에 비하면 마흔까지의 20년은 참으로 담백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부여받기만 했던 이전의 20년과 달리,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첫 번째 20년이다.

이 시기는 체력은 쇠약해져도 정신이 성장하는 데 정말 중요한 시간이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제 몫을 할 줄 아는 어른으로 보증받고 사회에 나가 일하면서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내 시간을 돌려받는 운영을 반복한다.

타임카드를 찍고 출근하는 회사원, 언제 올지 모르는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자영업자, 아이나 노인을 부양하는 가정 내 노동자, 모두 타인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쓴다.

 

마흔까지의 20년을 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쫓기면서 지내다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네!'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많다.

주어진 역할에 무턱대고 열중해야 하는 한창일 때이기 때문에 그 이유가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된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만 짜내는 '하기'를 가속화시키는 방법 이외에 '안 하기'를 늘려 가는 사고방식도 있다.

생각해 보면 굳이 안 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 세상에 참 많다.

대부분의 인간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도 결국 그 뜻은 다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므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당장 시작하고, 하기 싫은 일은 당장 그만두면서 더욱 자유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과거에 큰 세대로 구분되던 마흔이 젊은 부류에 속한다.

육체적 성장의 절정에 놓인 성인이 정신적 성장에 의거하여 마흔에 상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늘어간다.

과학적으로 예측되는 사실이다.

불과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생식 능력이 높을 때는 자녀를 많이 낳고 쉰 살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녀가 독립하고 시작하는 제2의 인생이 제1의 인생보다 길어졌다.

 

의료와 간병의 도움 없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는 '평균 건강 수명'도 길어졌다.

뜻밖의 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을 앓지 않는 한 오래 살 수 있고, 작은 부상과 병은 세포 재생 기술로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백 살까지 사는 사람의 존재는 당연해지고, 이백 살까지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올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여든 살인 세상에 태어나서 백 세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현재 구글사는 인생 500년 시대의 도래를 주시하며 불로장생의 비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웬만하면 죽지 않는' 미래를 상상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조금씩 늘어나는 주름이나 흰머리도 아니고 좀처럼 쌓이지 않는 노후 자금도 아니다.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일생 동안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그 시간이 대체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생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면, '짧고 굵게 젊을 때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긴다'는 순간적인 만족을 추구하기보다 '가늘고 길게 스스로를 어르며 인생의 행복을 가꾼다'는 지속적인 만족을 지향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수 사회에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기술이다.

 

시간 때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가장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최근에 사회적 문제가 된 '정년 퇴임 후 우울증을 앓는 중장년층'의 증가는 이와 관련이 깊다.

앞으로는 자유 시간에 대한 내성이나 면역력 그리고 여가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이 노동의 성과 이상으로 삶의 보람을 형성해 나갈 것이다.

 

아주 먼 미래라고 여기던 쉰 살의 고개가 지금의 마흔처럼 금세 다가올 듯하다.

하지만 예전만큼 초조하지 않다.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 나는 나로 살 것이다.

예순 전에 그 성과를 수확하는 게 희망 사항이다.

35. 나에게 가족은 여기까지가 최선이에요 272p

작년에 잠시 일본으로 돌아왔을 떄 제사와 성묘를 위해 가을 천신제 시기에 맞춰 시골에 위치한 외가를 오랜만에 들렸다.

가까운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추억을 되새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부모 세대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지 조부모 세대를 간병하면서 각자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의 근황을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라인 그룹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결혼식, 장례식 사진에 이모티콘 정도는 보내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친척 관계'를 그만두었다.

지금은 해외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런 면에서 좋은 면죄부가 된다.

가끔씩 나타나서 얼굴을 조금만 비춰도 대단히 반겨 준다.

 

나는 인생에서 참고 견디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여긴다.

그래서 빠르게 친척 관계를 그만둔 나의 결단이 참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학업과 일에 치이면서 정신이 없이 살았다.

본가를 나와 혼자 살다 보니 통신망이 지역권을 이탈하는 일이 늘어났고, 가족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일이 극히 드물어졌다.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는 친척과의 관계에 얽매이기보다 생판 남인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친구가 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을 파트너로 선택해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편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같은 피가 흘러도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유전자를 물려받은 관계일수록 가까이 있으면 서로 불편한 법이다.

10년 후에 만나도 웃는 얼굴로 인사할 수 있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친척 관계를 그만두었다.

 

36. 영원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 277p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을 계획이다.

그래서 더더욱 친척 관계를 그만두었다.

우리는 소극적인 편이라 인연을 딱 끊지는 않았다.

그저 일본에 잠깐 귀국할 때 한두 번 얼굴을 비추면서 1년 365일 중에 이틀 정도는 함께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거라고, 본가에 추석과 설날에만 들르는 곳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절연이나 의절 같은 가열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서서히 친척 관계를 그만둘 수 있다.

친척 관계와 상관없이 연락처를 새로 등록해서 개별로 완전히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거나, 관계가 불편한 친척은 연락을 끊지 않되 무리해서 어울리지 말고, 질긴 악연이 오래 이어지는 친구 같은 거리감으로 어중간한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인간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 모든 인간관계를 내 멋대로 끊고 맺을 수는 없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 그만두기 기술을 잘 활용하면 특별한 의미와 과도한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하는, 일희일비하는 마음을 조금씩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37. 미인은 잠꾸러기? 잠이 보약이다 282p

마흔이 되기 전에 여러 가지를 그만두었다.

이를 통해 미래를 주시하며 단념하는 힘과 얼마 정도의 경비를 얻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하기 싫은데 계속하면서 빼앗겼던 본래 나의 것인 자유 시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의 여백이 없으면 나는 착실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동료가 한숨을 돌리려 수다를 떠는 동안에 혼자 가만히 잠자코 있는 것도,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장소를 택시로 빨리 가는 것도, 차를 타야 하는 거리를 일부러 도보로 걸어가는 것도, 약간의 짬을 누비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런 충전의 시간을 확보해야 나는 인간 사회와 겨우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시간이 아깝다', '시간이 없다', '자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라고 한탄하면, 사람들은 내가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죽어 버릴까 봐 불안해하는 워커홀릭인 사람으로, 요령과 솜씨가 좋아서 엄청난 분량의 일을 척척 해치우는 사람으로 오해한다.

천만의 말이다.

나는 결코 시간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서툴다.

생활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잘 자는 게으름뱅이'이다.

그토록 자유 시간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이유다.

 

정년까지 일할 생각이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삼십 대 초반에 이직했다.

그리고 서른다섯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는 중이다.

그 체험담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당시에 퇴직금은 얼마였는지, 어떻게 해도 이야기의 중심은 항상 돈이다.

또 궁극적으로 꿈은 이루어졌는지, 원하는 인생을 얻었는지를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푹 잘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라고 답한다.

사소해 보여도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자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다.

38. 내가 만원 전철에서 뛰어내린 이유 289p

어릴 때부터 나는 작은 꿈이 있었다.

만원 전철 타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이 꿈을 남에게 말하면 웃는다.

너무 그릇이 작아서 나조차도 어이가 없다.

하지만 지금껏 인생을 사는 내내 늘 염두에 둔 목표다.

일본의 도시권, 특히 수도인 도쿄의 러시아워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승차율이 200퍼센트 가까이 되기 때문에 불쾌지수는 계측이 불가능하다.

 

뉴욕의 지하철도 피크 시간에는 엄청 혼잡하다.

지하철에서 서로 푸념을 늘어놓다가 외국인 친구들이 모두 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근데 도쿄는 더 심하지? 역무원이 플랫폼에서 사람을 물건처럼 밀어 넣는 영상을 본 적 있어"라고 물어 온다.

그럼 나는 "그렇지. 여기보다 더 심한 만원 전철에 여섯 살 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밀어 넣어졌지"라고 대답한다.

그때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크게 놀란다.

 

때는 바야흐로 버블 전성기였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풍족하던 시절의 일본 수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뉴스 방송에 나오는 분쟁지의 지뢰밭을 걸어 다니는 아이들에게 막대한 동질감을 느꼈다.

 

취학 아동이 의무 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갈 때마다 그 길에서 매일 인권 침해를 당한다면, 그리하여 아이들이 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만연하다면, 그게 그 나라의 현실이라면 잘못은 아이에게 있지 않다.

문제에 대한 책임은 철도 회사가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 온 사회 구조에 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그해 봄부터 12년간, 편도로 1시간이 걸리는 도심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병설된 초중고 일관교에 전철을 타고 통학했는데, 그때부터 나는 매일같이 치한을 만났다.

책가방을 둘러멘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이는 고작 한 자릿수였는데 말이다.

 

휘감겨 오는 손을 뿌리치고 발을 밟으며 크게 소리치기도 했고,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철도 경찰에게 인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만원 전철을 타지 않기로 수없이 다짐했다.

여기서 도망쳐 누구에게도 나의 존엄을 위협받지 않는 평화로운 생활을 내 손에 반드시 거머쥘 거라고.

 

내가 다닌 대학은 하행선 전철과 버스를 환승해서 다니는 교외형 캠퍼스였다.

첫 직장은 탄력 근무제를 운용하는 출판사였다.

직장에서 남녀 비율은 거의 반반이었고, 직속 상사는 자작을 좋아하는 여성 부장으로 성희롱 발언을 멈추지 않은 동료를 그 자리에서 때려눕히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소녀 시절에 치한에게 당한 피해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집과 더 가까운 학교를 다녔어야지", "사립학교에 넣은 부모를 원망해"라며 자기 책임이라는 식으로 떠들어 댔다.

"직장은 도심에 있고, 집은 교외에 있으면 만원 전철을 탈 수밖에 없지"라며 되레 나를 혼내는 일도 있었다.

 

이 같은 주장이 버젓이 통하는 사회라면 설령 여성 전용 차량이 성폭력 피해를 줄여 준다고 하더라도, 인신사고로 전철이 지연되어도 승객들은 고인을 애도하기보다 혀를 차며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비록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차로 출퇴근하고 만원 전철을 타지 않은 채 생애가 끝나더라도,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평화로운 삶은 누리지 못할 것이다.

온갖 악의 근원을 때려잡지 않는 한 그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미래는 남자든 여자든 암담하다.

 

 

 

 

39. 조국을 떠나며 297p

첫눈이 내리고 11월 중순의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차를 마셨다.

친구는 헝가리계 미국인이고, 서른다섯 살이다.

 

친구는 "난 아직 마흔 전이야. 애인은 있어도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어. 길고 긴 인생이야. 지금 이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했어. 이게 바로 그 결과야. 앞으로 1년간 술은 안 먹을 거지만 디저트는 먹을 수 있으니까 또 이렇게 만나서 차 마시자!"라고 말했다.

시나몬 롤 하나를 둘이 나누어 먹으면서 나는 친구에게 "파티라면 환장하는 네가 정말로 술을 끊을 수 있겠어?"라고 말하며 함께 웃었다.

 

나에게는 나의 인생이 있는 것, 즉 돈 때문에 일에 얽매이기 싫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최대화하기 위해 산다.

 

요가원에서 생활하는 디자이너 친구의 삶을 보고 '사십 대에 일정한 직장도 없이 결혼도 하지 않고 어슬렁거린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임기응변식 라이프스타일은 내가 일본에서 어른들에게 배운 인생 교훈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삶이라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모할머니에게 듣던 "이 아이는 언젠가 인간을 그만둔다!"라는 꾸지람이 생각 난다.

나는 어린 시절에 다 같이 똑같은 길에서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혼자만 낙오되어 굶어 죽는다고 교육받았다.

나 여기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결정되면 기업의 정직원이 되어 예순 살, 일흔 살까지 무사히 일하는 모습이 마땅히 그래야 할 '나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취직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내 또래들은 어느새 잃어버린 세대(일본의 거품 경제 붕괴 후의 극심한 불황기에 취업 활동을 경험한 세대)가 되었다.

 

직장 내 비정규직 고용률이 증가하고 친구들은 이직을 자주 반복했지만 '나의 미래'는 스무 살 안팎에서 격렬하게 싸운 사회와의 관계성에 빈틈없이 고정되어 평생 미동하지 않는 어른의 모습을 고수했다.

 

학생 때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시급이 높은 과외부터 음식점과 슈퍼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싱크 탱크를 드나들기도 했고, 사진가와 편집자를 보조하기도 했다.

수입원이 많은 덕분에 어느 한 곳이 사라져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는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제각각 직위를 대고 오제와는 다른 사회의 끄트머리에서 주워 먹으며 희한하게 잘 살아 있는 상태가 이유 없이 좋았다.

그래도 이모할머니의 으름장이 통했는지, 나는 그 많던 아르바이트를 하나씩 그만두고 회사원이 되었다.

 

큰 뜻을 품고 바다를 건너오지는 않았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 마침내 일본에서의 삶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여기서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했지만 우리 부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함께 나이 먹는 게 기대되는 이들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인생이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정도면 무엇을 해도 좋다.

반대로 안 해도 좋다.

요가원에 살면서 1년간 술을 끊어도 좋다.

조국에서의 삶을 끝내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좋다.

원하는 대로 인생의 여백을 사용하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하고 싶은 일이 안 보인다며 초조할 때도 일의 우선순위는 더하기가 아닌 빼기로 결정하고 싶다.

"모두 그만두고 시간이 남아돌면 어떡하나요?"라고 질문받으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기를 실천하고 있어요"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게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많다.

모두 그만두고 시간이 텅텅 비어도 겁낼 이유가 없다.

서둘러 그 시간을 채울 필요도 없다.

그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나의 것이다.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존재해도 되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유노북스에서 출판한 오카다 이쿠 저자의 마흔에는 홀가분해지고 싶다의 일부입니다.

마흔즈음이 아니어도 도움이 되는 책으로 구입해서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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